호주 국민투표 통과, 왜 첩첩산중일까?

원주민 헌법기구 보이스 설립에 관한 국민투표가 부결되면서 향후 노동당 정부가 제안하는 헌법개정안의 통과는 사실살 물 건너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A woman wearing a t-shirt that reads: "We support the Uluru Statement" comforts another women who has her head in her hands

The proposal to enshrine an Indigenous Voice to Parliament in Australia's constitution was comprehensively rejected on Saturday. Source: Getty

Key Points
  • 원주민 헌법기구 보이스 국민투표, 압도적 반대로 부결
  • 1901년 연방창설 이후 총 20차례의 국민투표 실시
  • 국민투표에 부쳐진 45개의 헌법개정 조항 가운데 단 8개 조항만 통과
  • 초당적 지지 선결 과제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와 인기영합주의적 강성우파 정치인의 증가가 이번 보이스 국민투표 부결의 핵심 원인이라고 한 역사학자가 주장했다

호주국립대학(ANU)의 역사학자 프랭크 본조노 교수는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 노동당 정부가 제안하는 국민투표의 통과 가능성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14일 실시된 원주민 헌법기구 보이스 국민투표는 전국적으로 찬성39.38%, 반대 60.62%로 부결된 바 있다.

각 주별 투표 결과 역시 단 1개의 주에서도 과반 찬성이 나오지 않았다.

이중과반의 원칙을 적용하는 호주의 국민투표가 통과되기 위해서는 NSW주 등 6개주 가운데 4개주 이상에서 과반 찬성표가 확보돼야 하고, ACT와 테러토리 등을 포함한 전국의 합산표가 다시 과반수를 넘어야 한다.

이로써 호주에서는 지난 1901년 연방창설 이후 총 20차례의 국민투표가 실시됐지만 총 45개의 헌법개정 조항 가운데 단 8개 조항만 통과된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 가운데 3개 조항은 1977년 국민투표에서 한꺼번에 통과됐다. 즉, 당시 여야간의 초당적 지지 속에 국민투표가 실시된 바 있다.

프랭크 본조노 교수는 "대표적 중도 성향의 자유당 지도자였던 말콤 턴불 당시 연방총리가 울루루 선언문을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다"는 해석을 내놨다.

연방총리 재임 시절 '보이스' 설립을 사실상 반대했던 말콤 턴불 전 연방총리는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 민간인 신분에서 찬성 캠페인에 적극 가담한 바 있다.

프랭크 본조노 교수는 "말콤 턴불 당시 연방총리는 당내 우파 세력 및 국민당의 입김에 휘둘렸고 결국 울루루 선언문 실행조치에 나서지 못했는데 결국 호주 보수당의 중도계파의 한계를 보여준 실례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당내 절충안 도출도 매우 어렵고, 이로 인해 국민투표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더욱 어렵게 하는 근간이다"라고 말했다.



Malcolm and Lucy Turnbull hand out Yes pamphlets in Sydney.
Malcolm Turnbull backed the Voice after leaving politics, but decried it as a creating 'third chamber' of parliament while he was prime minister. Source: AAP / Dean Lewins
아무튼 역사적으로 호주에서는 초당적 지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투표에 부쳐진 헌법개정안이 통과된 사례는 단 한차례도 없다.

특히 노동당이 제안한 헌법개정안에 자유당 연립 측은 단 한차례도 공조를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국민투표는 모두 부결된 바 있다.

이번 원주민 헌법기구 보이스 국민투표의 경우 자유당 연립의 한 축인 국민당이 지난해 11월 '보이스 반대' 당론을 선제적으로 결정했고, 자유당 역시 올해 4월 반대 당론을 결정한 바 있다.

특히 자유당은 2022 연방총선에서 중도계파 후보들이 무소속에 패하면서 결과적으로 강경 우파 의원들이 득세하고 있는 상태이다.


프랭크 본조노 교수는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야당의 반대 톤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분석했다.

그는 "몇 십년 전만해도 민주주에 대한 고려 차원의 합의와 절충의 정치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오직 당파 정치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우려했다.

프랭크 본조노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이번 보이스 국민투표를 통해 호주에서 한층 심화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Peter Dutton and Jacinta Nampijinpa Price speak at a press conference.
Peter Dutton said Albanese had shown a "real arrogance" in the way he approached the referendum. Source: AAP / Jono Searle
14일 저녁 국민투표가 부결로 확정된 직후에도 앤소니 알바니지 연방총리와 피터 더튼 자유당 당수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비방전을 이어갔다.

알바니지 연방총리는 국민투표 부결의 직접적 원인은 야당인 자유당 연립의 반대를 손꼽았다.

앤소니 알바니지 연방총리는 “구체적인 분석 작업이 진행되겠지만 역사적으로 초당적 지지가 없는 상태에서 국민투표가 통과된 적이 없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반대입장을 고수했던 야당 측을 지목했다.

반면 피터 더튼 자유당 당수도 국민적 단합을 호소하는 한편 "이번 국민투표는 불필요한 국가적 낭비였다"고 일갈하며 "보이스 설립 발상이나 그 과정은 국민적 단합이 아닌 분열만 촉발시켰다"고 질타했다.

피터 더튼 자유당 당수는 “보이스 국민투표는 명백히 성공하지 못했는데 국가를 위해 최선의 결과가 도출된 것이었다”면서 “국민을 단합시키지 않고 분열로 몰아간 이번 국민투표는 실시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직격했다.

장래의 국민투표도 불투명?

이번 보이스 국민투표가 부결된 직후 당내 일부 의원들은 노동당이 재집권할 경우 국민투표를 재강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앤소니 알바니지 연방총리는 "보이스 국민투표의 재강행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

프랭크 본조노 교수도 "공화제 국민투표 부결에 보이스 국민투표 부결 등의 사례를 고려하면 노동당이 보이스 이슈로 다시 헌법개정을 시도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면서 "국민투표에 따른 막대한 에너지 등을 고려하면 노동당에는 치명적인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Anthony Albanese grimaces on Voice referendum night.
Anthony Albanese shut down talk of future referendums on Saturday night. Source: AAP / Lukas Coch

프랭스 본조노 교수는 하지만 현행 헌법개정이 시급한 분야도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연방의원의 이중국적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현재의 헌법 제44조와 같이 개정의 필요성에 여야 모두가 공감하는 조항이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노동당 정부가 추가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단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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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17 October 2023 12:05pm
By Finn McHugh
Presented by Yang J. Joo
Source: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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