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IN] 인류 역사를 뒤흔들고 인류의 삶을 뒤바꾼 전염병

"Wear a mask or go to jail" (influenza epidemic in California, 1918)

"Wear a mask or go to jail" (influenza epidemic in California, 1918) Source: A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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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와 늘 함께 해온 전염병. 역사와 인간의 삶에 변곡점을 안겨준 전염병은 전쟁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였다.


Highlights
  • 역사상 최악의 재앙 ‘흑사병’… 현대 유럽의 기초
  • 인류가 정복한 유일한 전염병… ‘천연두’ 1979년 멸종
  • ‘사회적 거리두기'… 조선 세종 14년에 이미 실천
  • 20세기 최고의 전염병 '스페인 독감'...진원지는 미국?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각종 전염병들은 수많은 변수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해온 다양한 전염병과 이를 극복하려는 투쟁의 역사를 통해 인류와 전염병의 관계를 짚어봅니다. 컬처 IN,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주양중 PD(이하 진행자):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 세계적으로 많이 읽힌 책의 하나가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알려졌는데, 이른바 흑사병 ‘Black Death’라고도 불리는 페스트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기록되고 있죠?

유화정 PD: ‘검은 죽음’이라는 이름만큼 무서운 이병은 ‘악마의 병’으로 불리며 아주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 왔습니다. 페스트는 쥐를 통해 감염되는 병으로, 흑사병은 살이 검게 썩어 들어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페스트는 현재까지도 진행되며 가장 최근 2019년 11월에 중국 내 몽골에서 두 명의 발병 사례가 있었습니다.

페스트는 1340년대 몽골에서 시작해 유럽을 강타했고, 유럽 전 지역이 페스트의 공포에 잠식당했습니다. 1347년부터 1351년,  4년사이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5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는데, 유럽 인구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 200년이 걸렸습니다.

진행자: 당시 의사들은 새부리처럼 부분이 길게 튀어나온 가면과 모자를 쓰고 진료를 다닌 것을 자료를 통해 있는데요..

유화정 PD: 지금 보면 다소 기괴해 보이는 이 모습이 페스트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남아있는데요. 이들은 전문 의사가 아닌 임시 고용의사로 당시 흑사병 환자가 것잡을 수 없자 동원된 지역의 경험 많은 일명 돌팔이 의사가 주를 이뤘다고 합니다. ‘역병의 악마’를 쫓는 독수리 가면을 쓴 의사들의 치료법은 개구리나 비둘기를 가져와 독을 빨게 하는 정도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생 양파를 썰어 집 안에 두거나 식초에 목욕하기, 에메랄드를 부숴 먹기 등 미신적인 처방이 효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채찍질 고행단을 만들어 스스로 혹은 서로를 채찍질하면서 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려 병이 치료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도 했습니다.
the 'Pest'doctor wears protective clothing to avoid contact with the plague contagion suspected to be in the air
the 'Pest' doctor wears protective clothing to avoid contact with the plague contagion suspected to be in the air Source: dailypost
진행자: 중세 유럽의 전성기는 페스트로 막을 내렸지만, 이로 인해 현대 유럽이 형성되고 자본주의가 발생하는 기초가 됐는데, 어떻게 보면 전염병이 현대사회를 낳았다는 괴변의 논리가 성립되죠…?

유화정 PD: 유럽의 인구가 3분의 1로 줄자, 당장 노동력 부족이라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농노의 대규모 죽음으로 임금이 치솟고 땅 값은 싸져 파산하는 지주가 늘어났습니다. 이런 변화로 봉건 영주들이 토지에 묶어 두었던 농노라는 세습적 구분이 없어지면서 봉건사회 구조 자체가 무너졌고,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상속법에도 변화가 생겨, 전염병 이전에는 아들 특히 장남만이 재산을 상속받았으나 이후는 모든 아들들과 딸들이 재산을 상속받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위협이 되어 왔던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전염병이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잉카문명이 불과 수백 명의 스페인 군인에게 멸망한 이유가 바로 역병 천연두 때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죠?

유화정 PD: 천연두는 소로 인해서 옮는 질병으로 스페인이 들어오기 전까지 남미에는 소가 없었고, 천연두에 면역력이 없었던 원주민들이 큰 희생자를 낸 것인데요. 당시 천연두에 감염돼 잉카 원주민 무려 90%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천연두는 영국인들의 호주 이주 초기 호주 원주민 아보리진의 50% 이상을 사망시켰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천연두는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발견한 종두법으로 1979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천연두는 멸종된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천연두는 인류가 정복한 유일한 전염병입니다.

Edward Jenner and the history of smallpox and vaccination
Edward Jenner and the history of smallpox and vaccination Source: Getty Images


진행자: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무서웠던 전염병 역시 천연두인데, 조선시대 선비들의 초상화를 보면 5명의 꼴은 곰보 얼굴을 하고 있는 데서도 천연두가 얼마나 창궐했는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일명 ‘마마’라고 불렸죠?

유화정 PD: ‘마마 신’이 강림했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으로 그만큼 당시로서는 무섭고 불가항력적인 질병이었습니다.조선시대에는 인구의 반 이상이 아동기 이전에 사망하였는데, 이러한 아동 사망의 주원인이 천연두였습니다.

누구나 걸리는 통과 의례였기에 ‘백세창’이라고 해서 백 살을 먹어도 한 번은 걸려야 하는 병으로 인식이 됐었고, 어릴 적 천연두와 홍역을 앓지 않은 사람은 커서 사람 취급을 제대로 안 해줄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천연두로 죽게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고열 때문이었는데, 천연두가 낫는다 해도 딱지가 곱게 떨어지지 않으면 얼굴에 곰보자국이 생겨 평생 흉터로 남았습니다.

진행자: 조선왕조실록에는 전염병과 관련한 기록이 무려 1건이 넘는다고 하는데, 세종 14년에도 대규모의 전염병이 발병했고, 이때 이미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천이 됐다는 기록이 있죠?

유화정 PD: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32년 세종 14년에 대규모의 전염병이 발병했는데, 초유의 재난에 맞선 세종은 당시 추진되던 토목공사를 중지하고, 관리를 파견해 전염병 대책에 잘못이 있는지 낱낱이 파악했습니다. 아울러 병에 걸린 백성들을 분산 수용하고 질병을 얻은 자는 다른 사람과 섞여 살게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하는데요. 오늘날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최고의 예방법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미 590년 전에 실천한 세종의 혜안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진행자: 20세기 최고의 전염병이라면 세계 인구의 약 1명이 죽고도 지금까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스페인 독감’이 있습니다. 얼핏 스페인이 발원지라고 생각되지만, 실제 독감의 발원지는 미국이었죠?

유화정 PD: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 시작해 1920년까지 유행한 스페인 독감의 첫 발병은 1918년 미국 캔자스 주였습니다. 병사 몇 명에게서 고열과 통증, 무기력증 등이 발견됐는데 독감과 비슷해 처음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이후 유럽에 파병된 미군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며 전 세계로 확산됐습니다.

당시 세계 인구의  5%가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는데, 약 5 억 명이 감염돼 1차 세계대전 전사자보다도  많은 1억 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말 그대로 전쟁보다 무서운 독감이 됐습니다.

Influenza epidemic in United States. St. Louis, Missouri, Red Cross Motor Corps on duty, October 1918.
Influenza epidemic in United States. St. Louis, Missouri, Red Cross Motor Corps on duty, October 1918. Source: National Archives


진행자: 코로나 19발원지가 중국 우한으로 알려져 초기에는 우한 바이러스로 불리기도 했는데, 미국에서 처음 나와 세계에 퍼진 질환을 스페인 독감으로 명명한 이유는 뭔가요?

유화정 PD: 당시 각국이 전시 보도통제로 이를 쉬쉬했지만 중립국 스페인에서는 가감 없이 보도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당시 유럽에서 유일하게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이 새로운 독감의 출현을 언론에 집중 보도하면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실제 독감 발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진행자: 현대사의 최대의 유행, 팬데믹으로 기록된 스페인 독감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질환인데, 어떤 점이 비교 주목되는 부분인가요?

유화정 PD: 스페인 독감은 조류독감의 일종으로 첫 파동 때보다는 1919년 2차 파동 때 더욱 강력한 바이러스로 변이해 퍼졌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든 전염병이기도 한데요. 정치적 고려에 따른 초동 대처 실패와 언론의 침묵이 세계적 대재앙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코로나19 사태와 흡사합니다.

유럽에선 스페인 독감이 유행한 초기에 의료 종사자들이 많이 감염되면서 의료체계가 마비돼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없어 희생자가 더욱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는데, 이런 점이 또한 코로나19 상황과도 상당히 닮았습니다. 스페인 독감의 팬데믹을 계기로 예방접종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면서 특히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최우선적으로, 의무적으로 접종하는 제도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세계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이제는 이상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없다’는 학자들의 견해가 나오고 있는데요. 코로나19지나간 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유화정 PD: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세계라는 공동체를 한데 묶었던 키워드인 ‘세계화’ 앞에 반(反)이라는 글자가 추가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PEW)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93%인 72억 명이 코로나19 영향으로 국경을 부분 또는 전면 봉쇄하는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비행기로 전 세계 어느 곳이든 24시간 이내에 날아갈 수 있는 세계화 시대에 서로 문을 걸어 잠그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겁니다.

진행자: 다른 변화로는 전염병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면서 대면·접촉을 줄인 원격근무가 일상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지배적이죠?

유화정 PD: 팬데믹 기간 미국에서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원격 근무자의 59%는 폐쇄 조치가 완전히 해제되어도 가능하면 원격 근무를 계속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바클레이스와 트위터 등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대기업들은 비싼 도시의 사무공간은 더 이상 불필요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실제 이 두 기업은 팬데믹 이후 직원들의 통근을 중단하고 원격 근무 지속을 위한 정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코로나19인해 오래된 정책과 절차·관습·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환경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 이번 팬데믹이 주는 중요한 교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화정 PD: 한 심리학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국면은 바로 ‘선택성의 확장’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지금까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정보 등을 잇는 연결의 양이 증가하는 시대를 살아왔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연결의 대상과 내용을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라고 부연했는데요.  많은 사람이 팬데믹으로 사람 간 접촉이 제한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람을 못 만나는 게 아니라 안 만나도 되는 선택지가 더 생겼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자리에 예의 차리면서 가야 했던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고, 이렇게 벌어들인 시간은 가족 혹은 좋아하는 사람과 보낼 수 있고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멸종된 줄 알았던 동물들이 자연으로 다시 돌아오고 대기의 질이 좋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진행자: “21세기는 전염병의 시대”라는 WHO선언처럼 언제라도 우리 앞에 새로운 병, 모르는 병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뒤흔든 전염병의 사례를 통해 전염병과 인류의 인과 관계 살펴봤습니다. 유화정 프로듀서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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