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IDOC 주간’ 탄생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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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IDOC Week 2020 theme: Always Was, Always Will Be Source: naidoc.org.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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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는 원주민과 토레스해협 군도민의 역사와 문화, 성취를 기념하기 위해 NAIDOC 주간을 매년 7월에 기념한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NAIDOC 주간이 11월 8일부터 15일로 연기됐다. ‘NAIDOC 주간’ 탄생 배경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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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호주에서는 원주민과 토레스해협 군도민의 역사와 문화, 성취를 기념하기 위해 NAIDOC 주간을 매년 7월에 기념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NAIDOC 주간이 11월 8일부터 15일로 연기됐는데요,

NAIDOC 주간은 호주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군도민의 역사적, 문화적 업적을 기념하는 주간이지만 현재는 호주 원주민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함께 하는 축제의 한마당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NAIDOC 주간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그 역사를 알아보는 시간 마련합니다.

진행자: 우선 NAIDOC의 의미가 무엇인지 먼저 설명해 주시죠.

조은아: 네, NAIDOC은 원래 ‘전국 원주민 및 군도민의 날 기념위원회( NAIDOC, National Aborigines and Islanders Day Observance Committee)’의 두문자어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원주민 역사와 업적을 기리는 주간인 ‘NAIDOC 주간’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호주에서는 매년 7월 NAIDOC 주간을 기념하고 있는데요, 중요한 원주민 이슈에 대해 의식을 제고하고 또 이를 반영하는 다양한 테마들이 매년 선정됩니다. 올해 테마는 무엇으로 선정됐나요?

조은아: 네, 올해 테마는 ‘항상 있었고 항상 있을(Always Was, Always Will Be)’입니다. 올해의 테마로 선정된 ‘Always Was, Always Will Be’는 원주민이 호주 대륙에 6만5000천 년 이상 존재하면서 이 땅을 보살펴 온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호주의 역사가 1606년 네덜란드인이 퀸즐랜드주 케이프 요크 반도에 도착한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며, 혹은 1770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현재의 시드니 근처 보타니(Botany) 만에 최초 상륙한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호주 대륙에는 원주민의 역사가 존재했다는 것과 그들이 호주 최초의 사람들임을 인정하고 이를 축하하는 주간으로 기념하자는 의미입니다.

진행자; NAIDOC 주간은1920년대와 30년대 발생한 원주민 권익 활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요,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인 1월 26일은 호주 원주민들에겐 영국 식민지의 시작을 알린 ‘침략의 날’ 또는 침략으로부터 ‘생존한 날’로 여겨집니다. 그 때문에 현재까지도 오스트레일리아 데이 날짜를 변경해야 한다는 공방이 지속되고 있는데요, 1920년 전부터 호주 원주민 권익 단체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를 보이콧했다구요?

조은아: 네, 말씀하신 대로 원주민들에게 1월 26일은 ‘침략의 날’로 여겨지는데요,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데이가 영국 제1함대가 포트 잭슨에 상륙해 1788년 1월 26일 아서 필립 총독이 시드니 커브에 깃발을 꽂아 영국의 통치권을 선언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1920년 전부터 호주 원주민 권익 단체들은 호주 원주민의 위상과 처우에 항의하며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를 보이콧했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까지 호주 국민 대부분은 이 같은 보이콧에 대해 대체적으로 알지 못했는데요, 이같은 움직임이 진전을 보이기 위해서는 행동이 요구됐습니다.

진행자: 그같은 요구에 따라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원주민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결성되죠?

조은아: 네, 그렇습니다. 1924년 호주원주민진보연합(Australian Aborigines Progressive Association)이 탄생했구요, 이후 1932년 호주원주민연맹(Australian Aborigines League)이 창설됐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과 노력은 대체적으로 간과됐는데요, 뿐만 아니라 정부와 법집행기관의 강압도 상당했는데, 결국엔 호주원주민진보연합이 활동을 접어야 했습니다.
진행자: 1938년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에 역사적인 가두 행진이 벌어졌는데요, 권익 운동가들이 가두행진을 벌이며 이날을 ‘애도의 날(Day of Mourning)’로 지칭했는데, 바로 ‘전국 원주민의 날(National Aborigines Day)’의 탄생을 이끌었죠?

조은아: 네, 그렇습니다. 호주원주민연맹(Australian Aborigines League) 창설자인 원주민 지도자 윌리엄 쿠퍼 씨는 초기 원주민 권익 운동을 주도한 인물인데요, 쿠퍼 씨는 원주민들이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믿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생애 전반에 걸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부분 좌절됐음에도 계속 이를 추진했었는데요, 그는 호주전국선교위원회(National Missionary Council of Australia)에 서한을 보내 ‘애도의 날’을 연례 행사로 만들기 위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후 1940년부터 1955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 데이 전 일요일이 ‘애도의 날’로 기념됐는데요, 이 날이 바로 ‘전국 원주민의 날(National Aborigines Day)’의 시초입니다.

진행자: 1955년에 ‘원주민의 날’ 기념 날짜가 7월로 옮겨졌는데, 그 주요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조은아: 네, 말씀대로 ‘원주민의 날’ 기념 날짜가 7월 첫째 주 일요일로 옮겨지게 됐는데, 그 이유는 이 날이 단지 ‘항의의 날’이 아닌 원주민 문화 역시 기념하는 날이 돼야 한다는 것에 기반한 결정이었습니다.

진행자: 이후 ‘전국 원주민의 날 기념위원회’, NADOC(National Aborigines Day Observance Committee)’이 설립되죠?

조은아: 네, 그렇습니다. 대표적 원주민 단체들과 각 주 및 연방 정부, 그리고 다수의 교회 단체들 모두 ‘전국 원주민의 날 기념위원회’, NADOC의 설립을 지지했구요, 동시에 7월 둘째 주는 원주민과 그들의 유산을 기념하는 날이 됩니다.

진행자: 1967년 역사적인 국민투표가 진행됐는데요, 1967년 원주민을 인구조사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투표(referendum)가 90% 이상 찬성으로 통과되면서 그때부터 원주민들이 호주 인구에 포함됐고 사회보장 혜택도 받게 됐습니다.  이후 1972년에는 원주민부(Department of Aboriginal Affairs)가 생기게 되죠…

조은아: 네, 그리고 2년 뒤인 1974년, ‘전국 원주민의 날 기념위원회’, NADOC의 위원들이 최초로 모두 원주민으로 구성됐는데요, 이듬해부터(1975년) ‘전국 원주민의 날’이 7월 첫째 주 일요일부터 둘째 주 일요일까지 주간 행사로 진행돼야 한다는 결정이 이뤄졌습니다. 현재의 ‘NAIDOC 주간(NAIDOC Week)’의 탄생인 겁니다.

1984년 ‘전국 원주민의 날 기념위원회(NADOC)’는 ‘전국 원주민의 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요구했었는데요, 호주를 특별하게 만드는 풍부한 문화적 역사를 인정하고 기념하는 것을 돕자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요청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NAIDOC
Avustralya çapında NAIDOC haftası kutlanıyor. Source: NITV
진행자: 이 때까지만 해도 현재의 NAIDOC이 아닌 ‘전국 원주민의 날 기념위원회’, NADOC이 원주민 관련 주요 행사들을 맡아왔는데, 언제부터 NADOC이 원주민뿐만 아니라 토레스 해협 군도민을 포함시킨 의미인 NAIDOC으로 확대된 건가요?

조은아: 네,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군도민의 문화적 역사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이 고양되면서 ‘전국 원주민의 날 기념위원회’ NADOC이 토레스 해협 군도민과 그들의 역사를 포함시키기 위해 확장됩니다. 이 위원회가 현재의 ‘전국 원주민 및 군도민의 날 기념위원회(National Aborigines and Islanders Day Observance Committee)’, NAIDOC이 된 건데요, 이후 NAIDOC은 토레스해협 군도민의 역사와 문화, 성취를 기념하는 주간 행사의 이름으로 쓰이게 쓰이게 됩니다.

진행자: 그럼 이후 이 행사는 어떤 기관이 맡아 주관했었나요?

조은아: 네, 1990년대 중반부터 ‘원주민 및 토레스 해협 군도민 위원회(ATSIC: 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Commission)’가 맡아왔는데요, 이 위원회는 2004년 해산됐습니다.  

이후 아덴 리지웨이 전 상원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전국 NAIDOC 위원회(National NAIDOC Committee)’가 매년 NAIDOC 주간 행사와 관련한 주요 결정을 내렸는데요,

2008년 리지웨이 위원장이 사임한 이후 ‘전국 NAIDOC 위원회’는 2명의 공동 위원장 체제로 바뀌었구요, 이 위원회의 위원들은 대부분의 각 주 및 테러토리의 대표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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