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IN] 6.25 참전 영국군의 잊혀진 전투…"후크 고지의 영웅들"

New memorial unveiled in #London honours British troops that served in the Korean War between 1950 and 1953

New memorial unveiled in #London honours British troops that served in the Korean War between 1950 and 1953 Source: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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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영국 노병들은 어느 날 갑자기 징집된 열일곱에서 열아홉 십 대 후반의 영국 젊은이들이었다. 영국 군은 한국 전쟁에 5만 6000여 명이 파병되어 5000여 명의 전사상자와 실종자, 포로를 냈다.


매년 6.25를 앞두고 거론되는 경구가 있습니다.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과거의 일을 반복하고야 만다.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조지 산타야나의 경구입니다. 한국 전쟁을 다룬 6·25 참전 영국 노병들의 이야기 ‘후코 고지의 영웅들’이 최근 한국에서 발간됐습니다. 컬처 IN에서 들여다봅니다.


Highlights

  • 6.25 참전 영국 노병들의 잊혀진 이야기 한국에서 첫 공식 출판
  • 이등병에서 대대장까지 총 22명의 노병들의 생생한 전장 기록
  • 치열했던 격전지 후크 고지… 전적을 확인할 비석 하나 없어

주양중 PD(이하 진행자): 6.25 한국전 당시 영국은 유엔군의 일원이자 영연방군의 일원으로 미국에 이어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나라이기도한데요. 6.25 당시 후크 고지는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의 하나로 알려져 있죠?

유화정 PD:후크 고지는 임진강 북단에 있는 해발 200미터 남짓의 능선입니다. 지형이 쇠고리 모양을 닮아 ‘후크(hook)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한국에서는 보통 사미천 전투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의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의 사미천 왼쪽 군사분계선을 끼고 서북쪽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걸쳐 있는 이 고지에서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바로 '후크 고지 전투'였습니다.

진행자: 6.25 한국전 당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낸 영국군 장병들의 수기를 묶은 ‘후크 고지의 영웅들’은 영국 내에서 공식 출판된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한국에서 출간될 있었나요?

유화정 PD: 이 책은 6.25 참전용사인 케네스 켈드 옹이 자신의 참전 경험담을 수기 형식으로 정리, 그분의 딸이 프린트해서 책자 형태로 묶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교포 김용필 소설가가 원본을 전달받아 한글 번역으로 한국에서 펴내는 최초의 공식 출판물입니다.

후크 고지의 영웅들』을 통해서 후크 고지 전투의 사실관계가 ‘위키백과’ 등을 통해 상당 부분 잘못 전달되고 있음을 당시 참전 노병들의 수기가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데요. 단적으로 미 해병 제1사단 제1대대장으로 기재된 데이비드 로즈 중령은 영국(스코틀랜드)군 블랙와치 연대 제1대대장이었음을 참전 노병들이 생생히 증언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후크 고지 전투 관련 사실관계들이 바로잡히고, 공식 출판 백과사전류에도 등재되기를 기대한다고 합니다.

1934년생인 케네스 켈드 옹은 1978년에 세워진 ‘영국 한국전 참전용사회’의 창립 멤버이며, 현재는 협회의 북부 잉글랜드 지부의 사무총장입니다.

British troops that served in the Korean War between 1950 and 1953
British troops that served in the Korean War between 1950 and 1953 imperial war museums Source: imperial war museums


진행자: 책은 6.25 전쟁 당시 처절했던 후크 고지 전투에 대한 사료로서도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있겠는데, 책의 내용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죠.

유화정PD: 1952년 10월부터 이듬해 휴전 직전까지 미군과 영연방군은 4차례에 걸쳐 중공군과 격전을 치렀습니다. 그 승전의 결과로 임진강 북단의 연천군 장남면과 백학면, 미산면, 왕징면 일대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귀속시킬 수 있었습니다.

1952년 11월 초에 벌어진 2차 후크 고지 전투에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른 블랙와치가 예비대로 물러나고, 11월 중순 그 자리에 바로 웰링턴 공작의 워털루 전투 전통에 빛나는 듀크 오브 웰링턴, 즉 듀크 연대가 투입됩니다.

중공군의 크고 작은 도발에 맞서 싸우며 한국에서의 혹독한 겨울을 보낸 듀크 연대는, 1953년 5월 28일부터 50여 시간 동안 처절한 참호 육박전을 벌인 끝에 고지를 사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진행자: 참혹했던 후크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에 맞서 분전한 전우들의 이야기, 책은 수기 형식으로 쓰였다고 했는데,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나요?

유화정PD: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돼 있습니다. 제1부는 메인 필자인 켈드 옹의 참전 수기로, 자신이 직접 치른 제3차 후크 고지 전투와 그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켈드 옹은 1952년 4월 징집영장을 받고 18세 나이로 그린 하워즈 연대에 신병 입대합니다. 6주간의 신병 기초 군사훈련과 10주간의 추가 훈련을 받고 1952년 11월 중순 듀크 연대 D중대에 배속돼, 투입과 동시 시작된 중공군의 공격에 맞서 분전합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11월 부산 유엔군 묘지에서의 작별 참배 사열을 끝으로 한국을 떠나 영국령 지브롤터에 머물며 징집병으로서의 나머지 복무 기간을 마치고 이듬해 1월 전역하기까지의 과정이 제1부 ‘한국전쟁과 나’에 실려 있습니다.
British troops that served in the Korean War between 1950 and 1953
British troops that served in the Korean War between 1950 and 1953 Source: imperial war museums
진행자: 책에는 이등병 소총수부터 선임하사,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포병대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스물두 명의 참전 노병들의 수기가 실려 있다고요?  

유화정PD: 주로 듀크 연대 장병들의 수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더불어 더함 경보병 연대, 에섹스 연대, 킹스 경보병 연대, 노스 스태포드셔 연대, 로얄 노섬버랜드 푸실리에스 연대, 그리고 왕립포병연대 출신 노병에 이르기까지 이를 통해 당시 영국군의 주력이 대거 6.25 전쟁에 참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산항에 도착한 영국군을 환영하는 미군 군악대의 ‘St. Louis Blues March’를 들으며 임진강 전선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고, 전투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짬에 간이 Pub에서 ‘I went to your wedding’을 즐겨 부르던 전우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된 이야기, 참호 안으로 들어온 뱀을 스텐 기관단총 탄창이 다 빌 때까지 쏘았으나 한 발도 맞추지 못한 이야기, 버려진 쥐가 먹은 초코바를 수색 정찰을 나갔다 온 병사가 멋도 모르고 주워 먹은 이야기 등 이 책에는 전장의 군인들이 전투와 수색 정찰, 진지 작업,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의 포로 생활 이야기 등이 실감 나게 담겨 있습니다.

진행자: 당시 영국은 5만 6000명이 파병되어 5000명의 전사상자와 실종자, 포로를 것으로 기록됐는데,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영국 병사들의 나이가 대부분 열일곱에서 스물 안쪽의 어린 병사들이었다고 하죠?

유화정PD: 대부분의 병사들이 만 17세에서 19세 사이로 그들은 대개 영국 워킹 클래스 (​working class) 출신으로 태어난 이래로 집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가 본 적도 없었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서는 북쪽 군대가 남쪽을 침략했다는 것 외에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영국인들이 자기 나라 군대가 코리아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몰랐다고 책은 전합니다.

전쟁에 징집된 병사들은 훈련소에 입소해 처음으로 받은 월급으로 평소에 먹고 싶던 맛있는 음식을 사 먹으며 좋아한, 설마 죽음이 날 어쩌겠나 하는 두려움조차 없이 마치 소풍 가듯 전쟁터에 오게 된 해맑은 청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전쟁의 참상을 실감하게 되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만 당장 부상당한 게, 죽은 게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을 담담한 일상처럼 받아들입니다.

KING'S OWN SCOTTISH BORDERERS COMMEMORATION PARADE, PUSAN CEMETERY, KOREA, 12 AUGUST 1952
KING'S OWN SCOTTISH BORDERERS COMMEMORATION PARADE, PUSAN CEMETERY, KOREA, 12 AUGUST 1952 Source: Imperial War Museums


진행자: 죽음의 확률이 자신에게 떨어질 거라고는 아마 그들 누구도 상상도 하지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유화정PD: 한편 전쟁 이야기이지만 전쟁 참전기가 당연히 가질 법한 엄숙함이 과도하게 깔려 있지 않은 데다 때로 유쾌하기도 합니다. 그 지옥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고향의 평온을 느끼기 위해 병사들이 모래 자루와 판자 때기로 Pub을 짓고 맥주 한 장을 마시며 웃고 노래합니다.

언제 적군의 포로가 될지, 포탄과 비명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자신들도 힘든데 작은 월급 쪼개 홍수 났다고 후원금을 걷는 이야기에서는 코끝이 찡합니다. 상사가 애지 중지하는 개의 판결에 따라 벌을 받고 안 받는 병영 에피소드에서는 웃음도 지어지는데요. 이는 외국인이 갖고 있는 특유의 유머감각, 우리에게는 찾기 어려운 긍정과 낙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진행자: 참전 용사들의 전장에서의 삶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아내들의 이야기도 실렸다고요?

유화정PD: 참전용사 아내가 쓴 수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2차 대전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남편이 다시 동원 명령을 받고 한국으로 떠나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보며 아직 걸음걸이도 서툰 두 아이를 키워야 했던 한 젊은 아내의 이야기는 우리가 쉽사리 느껴 보지 못한 또 다른 전쟁의 기록으로 다가옵니다.

이 책 말미에는 남편을 전쟁터에 보냈던 오드리 러시워스라는 여성의 수기가 실려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던 궁핍한 시절, 예비군으로 소집되어 나간 남편의 빈자리는 컸고, 그녀와 그녀의 아기들은 어떤 날은 코코아 한 잔으로 끼니를 때워야 할 만큼 가난에 시달리면서 전선에 나갔다가 중공군의 포로가 된 가장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진행자: 대목에서 한국전 참전 기간 전사한 호주육군3대대장 챨스 그린 중령의 미망인 올윈 그린(Olwyn Green OAM) 여사를 떠올리지 않을 없는데요.

유화정PD: 네. 지난해 초 별세 소식이 전해졌죠. 고 올윈 그린 여사는 한국전 참전 영웅이었던 챨스 그린 중령의 아내로 27세의 나이에 미망인이 됐습니다. 지난해 초 96세로 별세하기까지 한평생 한국전 참전용사와 유가족을 위해 봉사하고 한국과 호주 정부의 협력관계에 기여해 왔습니다. 순직한 챨스 그린 중령은 2019년 한국 정부로부터 을지무공훈장이 추서 됐습니다.

진행자: 지난해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 정부를 비롯해 해외 참전국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펼쳐졌는데, 호주에서는 참전 용사 얼굴을 담은 경전철 운행이 크게 눈길을 끌었죠? 
‘LEST KOREA FORGET’ SYDNEY LIGHT RAIL CAMPAIGN 2020
‘LEST KOREA FORGET’ SYDNEY LIGHT RAIL CAMPAIGN 2020 Source: Consulate General of the Republic of Korea in Sydney
유화정PD: 주시드니 호주 총영사관은 6.25 전쟁 70주기를 맞아 호주 참전용사 8인의 얼굴을 담은 경전철 운행 캠페인 'Lest Korea Forget' 캠페인을 6.23일~7.26일까지 한 달간 진행했는데요. 총 5주간에 걸쳐 도심을 통과하면서 500만 시드니 시민들에게 한국인들이 6.25 전쟁에 참전한 호주인 영웅들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점을 전할 수 있었는데요. 이후 시민들의 호응 속에 'Lest Korea Forget' 캠페인은 2020.12.31일까지 연장 진행됐습니다.

경전철 포스터라는 좀 더 대중화된 방식으로 한국전쟁을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층의 호주인들에게 한국전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진행자: 1만 7000명의 호주 젊은이들이 평화와 자유 수호의 기치 아래,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동방의 자그마한 나라 한국에 파병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아들을 찾아 부산으로 가는 여정을 그린 'Passage to Busan' 시드니 문화원과 SBS abc호주 주요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죠?

유화정PD: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아들 빈센트 힐리(Vincent Healy)의 행적을 찾아 약 1만 5천 km의 먼 길의 여행을 나선 어머니 텔마 힐리(Thelma Healy)의 여정 노트로 힐리 여사 사후 그녀의 외손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루이스 에반스 씨가 할머니의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책으로 출간될 수 있었는데요. 이 책은 한국에서 ‘부산 가는 길’로 번역 출간되며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한국에서 전사한 아들을 찾기 위해 10년간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며 한국으로 가는 뱃삯을 모았다고 하죠.

유화정PD: 1950년 가을 이역만리 한국에서 아들이 전사했다는 비보를 접한 델마 힐리 여사는 반드시 아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어려운 형편에 통조림 공장에서 번 돈으로 10년이 지난 1961년 5월 마침내 한국 행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1만 5000여 킬로미터, 14일간의 항해 끝에 부산 유엔 묘지에 묻힌 아들을 만난 델마 힐리 여사는 “아들과 영혼의 재회를 이루었다” 고 말했고, 그녀는 아들의 무덤에서 가져온 흙과 돌을 자신의 몸에 평생 간직했고, 돌아가셨을 때 함께 안장했다고 합니다.

Passage to Pusan
'Passage to Pusan' documents Thelma Healy's, 10 year search for her son Vince Healy an Australian soldier who was lost in war. Source: AAP


진행자: ‘후크 고지의 영웅들’ 책의 기획자이자 메인 필자인 켈드 옹을 비롯한 스물 분의 참전 노병들 대부분이 당시 17~19세의 징집병이고 스스로 ‘Working Class’라고 밝힌 분들이라고요.

유화정PD: 전문적인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러프(rough)한 영문 1차 텍스트라서 한글 번역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영국 북부 지역민들의 언어 습관과 정서까지도 헤아려 한글본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요.

수기들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 지명 독촌Dokchon, 간동KanDong 등은 현재 지도와 지역 행정적으로도 확인이 되지 않고, 참전 노병들의 기억도 확실치 않아 그런 사실들을 각주로 해설해 놓았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포격전과 참호 육박전으로 치열했던 후크 고지 전적을 확인할 있는 아무런 흔적조차 찾아볼 없다면서요?  

유화정PD: 6.25 전쟁에는 2차대전 당시 독일 전선과 동남아 싱가포르, 버마 전선 등에서 전투를 치른 영국 예비역들도 동원되어 참전했습니다. 그분들의 증언을 통해 3차 후크 고지 전투가 2차대전 당시의 가장 격렬했던 전투 이상으로 격렬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후크 고지가 있는 연천군 장남면 일대에는 영국군과 영연방군의 전적을 확인할 수 있는 손바닥만 한 비석 하나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진행자: 당시 미지의 나라였던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현재의 발전된 한국은 없었을 것임을 다시금 상기하고, 아울러 한국전에 참전한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6.25‘잊혀진 전쟁’이 되지 않도록 더욱 관심이 제고되어야 하겠습니다. 

올해로 71주년 6.25앞두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10후반 영국 젊은이들의 이야기 ‘후크 고지의 영웅들’ 컬처 IN에서 주목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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